한국, 서울로 돌아옵니다.


돈암동에 있는 감자'국'의 명소인 태조감자국에 찾아갑니다. 이런저런 말이 있지만 현존하는 감자탕집 중 가장 오래된 가게인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죠. 을지로 동원집의 감자국이 냄비에 끓이는 게 아니라 뚝배기에 나오는 것에 주안점을 둔 작명이라면, 이 집의 감자국은 80년대 이전에 이 음식을 감자탕이 아닌 감자국으로 불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신여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건물 하나 뒷쪽에 있는, 거의 대로가 보이는 이면도로 코너에 있습니다. 날이 선선해서 그렇지 이게 토요일 저녁 9시의 풍경입니다. 10시까지도 웨이팅이 있는 듯하고.. 9시 쯤에는 가족 손님들이 슬슬 일어나고 젊은 선남선녀 커플들이 웨이팅 줄을 서는 것이 이채롭네요. 여성들은 모두 풀메이컵이고 남자들도 멋을 한껏 냈습니다. 오호라.


이렇다 합니다.


벽에 뭔가 많이 써 있습니다. 지금이 3대째인데 작고하신 2대째 사장님이 이런 거 좋아하시는 분이셨다고. 개업일도 콕 찍어서 1958년 1월 24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매년 그 쯤이면 가게에 써붙인 'XX년 전통' 글자를 바꿔붙인답니다. 내년이면 '60년 전통 태조감자국' 으로 바뀌겠네요. '원조'가 하도 많아서 '태조'라고 했다는 얘기도.


년수 바꿔 붙이며 가끔 가격도 바꿔붙이시는 모양. 뭐 그래도 여전히 싸긴 합니다. 크기 호칭이 재밌는데 대략 소 중 대 특 정도로 보면 되려나요.


마침 주방 바로 옆 1번 테이블에 앉은 김에 주방 사진도. 감자탕집 주방이 뭐 특별할 게 있나요. POS 상으로 보이는 테이블은 20개.


세팅. 유독 앞접시가 깨끗한 게 눈에 띕니다. 달인에도 뽑혔다는 깍두기는 치킨무에 고춧가루 묻힌 맛.


지난번 동원집 갔을 때 고기가 아쉬웠던 기억에 좀 큰 거 시켰습니다. 태조감자국 무진장 2만원. 


따로 파는 사리 재료들이 조금씩 얹혔고 보이는 야채는 거의 깻잎입니다. 올해 여름이 너무 더워서 깻잎이 거의 다 타죽었다던데 올 가을엔 이 집 어쩔런지. 호기심에 안 끓은 국물 떠 먹어보니 양념 없이도 이미 맛이 다 들었네요.


어차피 익힌 돼지뼈이니 팔팔 끓으면 먹습니다. 뭔가 양이.. 불길합니다.


제일 실한 뼈를 건져 한 방. 뼈의 부위나 크기는 꽤나 다양한데 2만원짜리 기준으로 여덟 덩이 쯤 들었습니다. 고기 맛은 나쁘지 않은데 너무 많아서 주문 실패 ㅠㅠ


엉덩이 쪽 갈비도 들었습니다. 고기 많아요 ㅠㅠ

끓어오를 때는 색깔도 그렇고 좀 거시기했는데 적당히 끓이니 맛도 배고 고기도 야들야들하고 좋습니다.


이런 짓 잘 안 하는데 고기를 다 못 먹고도 볶음밥을 시켜봅니다. 궁금했거든요.

볶음밥은 국물 거의 다 걷어내고 해 주시는 관계로 감자국 맛과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볶음밥에 국물 조금씩 섞어 먹으면 될 듯.


국물맛이나 뼈 자체의 퀄리티는 동원집보다 떨어지고, 어쩌면 잘 한다는 다른 감자탕집보다 그리 안 뛰어날 수도 있지만, 전통과 원조집이라는 가오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가격과 양에 있어서는 적수가 없어보입니다. 2만원짜리에 밥까지 볶으면 성인남자 서너명도 충분히 먹을 듯.


다음엔 배고플 때 와서 겸손히 작은 거 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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