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요미식회에 나와서 유명하다는, 그리고 그 전부터 소문이 자자한 신설동 육전식당에 가봅니다. 기왕이면 본점 방문.


신설동 로터리 주변으로 세 곳의 가게가 있는데 이게 아예 멀리 떨어진 분점 개념도 아니고 양재족발처럼 주변 가게를 인수하여 확장한 것도 아니고 좀 애매합니다. 이를테면 본점은 머니 집에서 가까운 분점을 가자 이것도 아니고, 본점에 왔다가 사람이 많으니 분점으로 가자 이러기도 애매하고.. 이런 경우는 처음 봅니다.


악명높은 번호표. 좌석도 많지 않으려니와 번호표 뽑거나 줄 서는 다른 식당과는 회전 속도의 차원이 다릅니다. 앉았다 일어나는 데 30분도 안 걸리는 식당도 많지만 이 집은 일단은 두시간 보장입니다.


가격인상 소식 + 분점마다 조금씩 다른 메뉴.


외벽에 붙어있는 메뉴입니다. 식사메뉴는 뭐.. 이렇게 기다려서 식사 딸랑 하고 나올 분은 없을테니 이제는 없어졌다 보면 될 듯.


이제는 별로 의미없는 이야기.


대기실에서 꽤 오래 기다리다 입장했습니다. 말 나온 김에.. 대기실은 있으나 에어컨 같은 건 없으니 각오를 단단히 하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명이나물 무생채 고추절임 파무침 동치미 백김치 마늘 생와사비 된장 소금 젓갈 야채가 세팅 됩니다. 줄 서서 기다리건 말건 다 치우고 세팅 다 하고 불까지 다 넣고서 손님을 앉힙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비규환인 가게 밖에 비해 내부는 그 정도로 복잡하진 않아요.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숯불이 들어가 있는 불판.


큰 마늘 잘라놓은 게 아니라 조그만 마늘을 내놓습니다. 사실 까고 관리하기 귀찮아서 그렇지 요새같은 철엔 작은 마늘이 달고 맛있죠. 오래 기다린 피로가 이런 작은 배려에 급 풀리는 느낌.


명이나물, 무생채, 고추 절임 그리고 파절이. 파절이는 고춧가루를 좋은 걸 썼는지 칼칼 매콤합니다.


고기 나왔습니다. 삼겹 2인분 목살 1인분 시켰더니 목살이 반쪽으로 나오네요. 2인분 시키면 한 덩이가 나올 듯.


온도체크 한 후 한번에 올립니다. 고기 때깔 좋지요?


오래 굽지 않고 뒤집었는데 익은 면이 갈색을 띕니다. 불판 온도가 생각보다 높은 걸 알 수 있죠.


목살 먼저 잘라서 줄 세워 놓고,


삼겹살도 잘라서 줄세웁니다. 목살 2인분 삼겹살 2인분 하면 한 바퀴 딱 맞겠네요. 보시면 아시다시피 고기를 굽고 자르고 배열하는 손길이 아주 정성스럽습니다. 뭔가 기대감이 뭉클뭉클.


어느정도 구워지면 불판 위에 방치하지 않고 이렇게 접시에 담아 주십니다. 좀 더 익어야 하는 연골 들어간 부위는 따로 더 올려두는게 역시 세심. 어린이를 동반한 테이블은 알아서 몇 점을 더 잘게도 잘라 주신다고.

지금 상태는 겉은 잘 구워졌지만 가운데를 자르면 약간 붉은 기가 남아있는 수준. 사실 돼지고기도 요 때가 가장 맛있죠. 뭔가 고기맛을 아는 집이란 생각이 스쳐갑니다.


한 점 갖고 와서..

소금만 찍어서 먹어봅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숯불 바베큐로 정말 잘 구운 돼지고기 맛입니다. 겉은 바삭하면서 안은 촉촉하고 그러면서도 싱겁지 않은 제대로된 고기맛. 심지어 씹다보니 한우를 연상시키는 고소한 향까지. 도대체 어떤 돼지고기를 어떻게 구우면 이런 맛이 나는 걸까요. 제주돼지니 돈사돈이니 다 뺨을 후려갈기는 맛.


목살에 생와사비 얹어서.

이것도 훌륭한데 삼겹살이 조금 더 감동적이네요. 한 점 두 점 .. 다 먹어가는 게 아쉬우면서 확실히 처음에 굽자마자 먹은 것보다 맛이 조금은 덜해가는 게 차라리 다행으로 느껴지는 심정, 이해가 되실까 모르겠습니다.


볶음밥 (3천원) 부탁드리니 이렇게 세팅.


종이 호일을 깔고 한번 비빈 후 호일의 네 귀퉁이를 번갈아 들어가며 뒤집어 줍니다. 볶는 동안에는 회덮밥같은 냄새가 나네요. 


잘 볶아진 후에 파르마산 치즈를 솔솔. 이것도 맛있네요.


그리고 김치찌개 (3천원) 고기만큼의 감동은 아니지만 역시 훌륭한 맛이고


된장찌개도 괜찮습니다.

대체 어떤 고기를 어떻게 숙성해서 어떻게 굽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인생 돼지고기라 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맛입니다. 거기에 더해 기다리는 건 괴롭지만 일단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는 메뉴 강요도 없고 시키는대로 다 해주시고 (위에 보시다시피 고기+볶음밥+찌개 두가지를 주문해도 다 받아주십니다.) 눈치도 안주는 등 서비스 면에서도 훌륭한 집이네요.

삼겹살 좋아하기로 유명한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 많은 삼겹살을 먹어왔는데, 그 중에도 깜짝 놀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동네 어귀에서 약주 한 잔 하시는 아버지를 모시러 갔다가 처음 얻어먹어본 삼겹살의 맛이나 초류향에서 처음 동파육을 맛 보았을 때의 놀라운  식감, 제주도 쉬는팡 가든에서 처음 접한 제주도 돼지, 스페인에서 먹어본 이베리코 돼지 삼겹살 등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이곳 육전식당의 삼겹살도 그 중의 하나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기회가 된다면 또 먹으러 갈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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